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한 번 재정 정책의 전면에 등장했다. 그가 대선중에 내세웠던 핵심 공약 중 하나는 바로 ‘One Big Beautiful Bill’이라는 이름의 법안이다. 이름만 보면 거창한 수사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은 미국의 경제 구조와 전 세계 금융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줄 수 있는 상당한 함의를 담고 있다.
트럼프의 법안은 기본적으로 2017년에 도입했던 감세 정책을 재연장하고,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국방 예산 확대를 포함한다. 동시에 복지·환경 예산의 축소와 이민 정책 강화가 동반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채한도를 최대 5조 달러까지 늘리겠다는 내용이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향후 10년 동안 약 2.4조 달러에서 최대 5조 달러 이상의 추가 부채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연방 부채는 이미 35조 달러를 넘어서며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또다시 대규모 재정 확대가 추진된다면 달러의 신뢰도는 자연스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사들일 유인은 약화되고, 국채 금리는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결과적으로 달러의 실질 구매력 저하로 이어지며,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 전체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처럼 달러와 미국 국채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는 상황에서 일부 투자자들과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자산이 있다. 바로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의 통제를 받지 않으며, 공급량이 고정되어 있고, 전 세계 어디서든 자유롭게 송금이 가능한 디지털 자산이다. 이러한 특성은 전통 화폐 시스템이 흔들릴 때 대체자산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왔다.
비트코인은 그동안 여러 차례 금융시장의 위기 속에서 주목받아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0~2021년의 코로나19 팬데믹이다. 당시 각국은 대규모 양적완화를 단행하며 유동성을 무제한으로 풀었고, 이는 곧 자산 시장의 급등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 비트코인도 큰 폭의 상승을 보였으며,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디지털 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단순한 투기 대상이 아닌, 법정 화폐와는 다른 방식의 가치 저장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비트코인이 완전한 안전자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높은 가격 변동성을 보이고 있고, 각국의 규제 정책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나 국세청(IRS)의 입장 변화는 비트코인의 가격에 직결되는 요소다. 더군다나 일부 국가는 여전히 비트코인을 합법적인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이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미국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불신이 커질수록, 통제받지 않는 자산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금과 같은 전통 자산은 이미 일정 수준의 평가를 받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성장 여력이 적은 상황에서, 비트코인은 기술적 진화와 새로운 수요층의 유입을 바탕으로 확장 가능성을 품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기관투자자들의 움직임도 비트코인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블랙록, 피델리티, 아크인베스트 등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비트코인 ETF를 추진하고 있으며, 일부는 실제로 미국 증시에 상장되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개인 투자자들이 아니라, 글로벌 자금의 흐름이 점점 더 비트코인을 하나의 자산군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또한 개발도상국이나 정치·경제 불안정 지역에서는 비트코인이 이미 ‘비상 통화’로 활용되기도 한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터키 등 화폐 가치가 급락한 국가에서는 국민들이 자국 화폐 대신 비트코인을 통해 거래하거나 자산을 저장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는 중앙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 비트코인이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다.
트럼프의 'Big Beautiful Bill'은 단기적으로는 미국 내 경기부양을 위한 조치로 포장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더욱 위협할 수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비트코인은 단순한 투자 수단을 넘어, 금융 시스템 내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요구받는 자산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비트코인이 진정한 안전자산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규제 환경의 명확성이다. 법적 지위가 안정되지 않으면 기업이나 기관들은 본격적으로 비트코인을 수용하기 어렵다. 둘째, 가격 변동성의 완화다. 일상적인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예측 가능한 가치 저장 수단이 되어야 한다. 셋째, 인프라와 사용자 경험의 개선이다. 현재도 많은 이들이 지갑 생성이나 보안 문제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이 부분이 개선되어야 대중적 채택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과제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이 지금과 같은 재정 불안정의 시대에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신호다. 이는 기존 금융 시스템이 갖고 있는 구조적 한계에 대한 경고이자,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시대정신의 반영이기도 하다.
결국 트럼프의 법안과 미국의 부채 위기는 단순히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닌, 글로벌 경제가 마주한 구조적 딜레마를 드러내고 있다. 그 속에서 비트코인은 아직 미완성된 도구일지언정, 기존 질서 바깥에서 유의미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흐름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다.